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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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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녹음예술의 메카... 서울사운드 그리고 녹음예술인 이 태경! 

한국연예협회 가수분과위원회의 계간잡지 목소리의 김 원찬 편집장과 공주연 사진작가의 서울사운드 청담동 스투디오탐방기가 실린 2003년 겨울호의 기사를 전재합니다.

이 태경 - 한국레코딩 엔지니어 역사의 산 증인이자 녹음의 최고수라는 그의 스튜디오를 설레는 마음으로 찾았다. 짐작했던 대로 압도하는 최 첨단 음향장비들이 즐비한 녹음스튜디오에서 편안한 성품의 그가 기자를 반갑게 맞아준다.  최고의 음을 추구하는 그의 장인정신은 그의 경력만큼이나 시설에서부터 빈틈업소 철저했다. 회사의 경쟁력인 명기 니브 녹음믹싱콘솔과 48트랙 디지탈녹음설비, 64트랙 하드디스크 워크스테이션 및 국제 ISDN망을 이용한 세계 유명 음악스튜디오간의 음악자료 교류를 위한 디지탈 오디오 전송장비등 본격적인 첨단 디지탈 녹음씨스템 등 장비와 시스템을 소개하는데만도 주어진 지면이 모자를 정도였다.

스튜디오는 영국의 에비로드 스튜디오를 설계한 샘 도요지마의 설계와 일본의 소나가 시공감리한 작품으로 특히 아나로그콘솔의 최고봉인 니브콘솔과 함께 조정석에서의 모니터링이 정확하고 편하다. 국내는 물론 해외의 유명 엔지니어들이 게스트 엔지니어로 참여하는 사운드힐 녹음 스튜디오는 한마디로 <창의력 넘치는 개방스튜디오>라고 표현하면 적합할 듯하다. 그러나 단지 시스템 취재가 전부라면 기자가 이곳을 찾을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   기자에게 서울사운드 이 태경 대표는 지극히 평범하고 속있는 예기를 건네었다. "첫째가 커뮤니케이션입니다 사람과의 인간관계에 의한 작업이 제일 중요하죠  그래서 저는 홈 스타일의 평안한 스튜디오를 지향합니다"   그의 이야기는 게속 이어졌다. "음악작업은 분업입니다  각 분야의 사람들이 공동작업에 의한 완벽한 조화 즉 하모니가 최상의 음악을 만들어 내는 힘입니다". 의외였다.  그의 음악 철학은 아니 문화사업경영론은 그가 지금 앉아있는 첨단 디지탈장비속에 아날로그 정신을 추구했고 컴퓨터음악의 인공음속에서 어쿠스틱사운드를 지향하고 있었던것이다.그는 가슴의 느낌이 전달되지 않고 아래위가 다 깍여버린 채 데이터만 전달되는 디지털음악에 대한 불만도 토로했다. 사실 그는 최근 수퍼아나로그(DSD)방식의 녹음 연구에 몰두하고있다.    

그는 항상 노력하고 공부하는 녹음 예술인이다. 1968년에 TBC 동양방송 엔지니어로 녹음계에 입문한 이래 모노사운드시대의 녹음과 우리나라 스테레오녹음의 여명기를 거치며 TBC운현궁스튜디오 음향감독에서 1978년 지구레코드 녹음부장으로 이적하여  우리나라 녹음기술의 현대화를 연 국내 최초의 멀티트랙 녹음, 그리고 우리나라 음악CD의 빠른 도입을 이끈 1984년 국내최초의 디지탈  멀티찬넬녹음(조용필6집) 그리고 1988년 서울사운드를 설립하여 본격적인 디지털마스터링스튜디오 시대를 여는등 그에게는 항상 "국내최초"라는 수식어가 붙어다닌다.

 현대 녹음의 여명기인 80년 초, 그 시기에 우리나라 엔지니어로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1982년에 받은 미국 암팩스사가 제정한 골든릴 상의 수상은 그를 보다 세계적인 녹음예술인으로 도약시키는데 강한 자극제가 되기도하였다.  그는 지구레코드와 함께한 10년동안 신화같은 수많은 힛트앨범을 녹음하며 틈틈이 선진국의 녹음이론과 스튜디오현장의 제작실제의 마스터를 위하여 국내외에서 많은 노력을 경주한다. 그 저력으로 선진 녹음기술과 사운드 처리기술 그리고 신 마스터링 기술도입과 연구에 앞장섰던 그가 88년 서울올림픽을 맞아하여 자의반 타의반으로 올림픽 스타디움 개폐회식 음향 운영책임을 맡으며 현재의 서울사운드를 창립하여 본격적인 자신만의 녹음세계 구축을 위하여 또다른 도전을 하기에 이른다. 서울올림픽사운드를 성공적으로 마무리짓던 시기인  1988년 가을에 그는 오랜 마스터링 현장 경험을 살려  국내 최초의 본격적인 디지탈마스터링 스튜디오를 설립하기에 이른다.  그의 마스터링스튜디오의 시작은 당시의 우리음악시장에는 생소한 단계였던 마스터링 과정을 성공적으로 음악시장에 안착시켜 우리나라 CD음질의 세계화를 이루는데 크나큰 촉매제의 역할을 하였고 CD시장의 급속적인 발전에도 큰 활력소를 불어넣어 주었다. 그후 그는 14년간 각 장르를 대표하는 수많은 국내정상급 가수들 뿐만 아니라 특히 클래식 음악의 녹음 및 마스터링에 이르기까지 국내 음악 전반에 걸쳐 기여한 공이 크다. 특히 서울사운드의 사운드복원기술 및 노이스크리닉 기술은 이미 국제적으로 인정받아 바이올린의 거장 루지에로 리치의 40-50년대 녹음물의 복원작업에도 참여하여 CD6장이 세계음악시장에 출반되었고 역사적인 문화 자료인 한국의 범종음원 복원작업 등 현재까지 서울사운드의 마스터링 및 음원복원기술은 세계적으로 높이 평가받고 있다.

대중예술인들의 필수품처럼 되어버린 담배조차도 피울수없는 국내 유일의 금연스튜디오로도 유명(?)한 서울사운드 "사운드힐"에서  지금도 순수한 청년의 열정으로 수많은 음악작업에 직접 참여하는 그가 있는곳에는 언제나 차별화 된 음악을 추구하지만 작업을 끝내고 나면 늘 아쉬움이 남는다는 그는 음악의 메신져의식과 실험정신을 강조했다. 그는 스튜디오의 주축인 엔지니어가 열정적으로 작업에 임할때 가수도 다른 뮤지션들도 열심히 할수 밖에 없고 결과적으로 좋은 음악이 탄생한다는 지론을 폈다.

직업에 대한 자긍심이 가득한 그에게 이번에는 가수들에 대한 질문을 했다.    기자가 아는 상식으로는 원로들인 김정구,백설희 선생부터 이미자,조용필,신중현,양희은,조용필,심수봉 그리고 근래에는 박정운,김장훈,태사자,쿨 등에 이르기까지 한국의 내노라는 수만은 가수들과 함께 앨범작업을 해온 그에게서 어떤 대답이 나올까 궁금하기도 했다. 그는 우리나라 가수들에게 많은 애정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대답은 전혀 색 다른 곳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저는 대중가요에서 가수의 목소리 비중이 80% 이상이라고 생각합니다. 대중에 대한 메신저로서의 사명감을 늘 지녀야하며 연출에 의해 만들어지는 가수보다 자기의 창법과 감정도 스스로 연구하는 훈련된 가수들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어요"  그가 유년시절부터 서른 넘어까지 교회 성가대 및 합창단 활동을 했으니 보컬에 관심을 갖는것은 당연할지도 모른다..  "지금 가수들은 뮤지션들이 주도하는 녹음에 너무 치우쳐 있어요" "그리고 어쿠스틱사운드 살리기 캠패인을 벌려야 할 정도로 어쿠스틱 녹음이 줄어들고 있습니다. 참 안타까운 일이죠"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에 남는가수가 누구냐는 질문에는 의외로 '뚜아에무아"의 이필원씨라고 대답햇다. 음악성과 자기 음악에 대한 심취가 마음에 든다고 말했다.  그와는 두장의 앨범작업을 하였는데 그중 한 장은 한국시장이기에 크게 힛트안된 명반중의 명반으로 기억하고 있다.

96년말에 청담동 언덕위로 스튜디오를 이전하고 정상의 사운드를 위하여 끈임없이 오르고자하는 의미로 스튜디오 이름을 "사운드힐"로 지어졌다.  "사운드 힐"은 첨단 녹음스튜디오와 마스터링 스튜디오로 국내외 유명 프로듀서와 엔지니어, 그리고 뮤지션들이 즐겨 찾는 우리나라 많은 녹음예술인들의 터전으로 자리잡았다. 그는 사운드힐을 찾는 모든 음악인들에게 내 집처럼 편안한 스튜디오로 운영될 수 있도록  소속 엔지니어들의 예절과 서비스정신 등 스탭들의 인성교육에도 많은 신경을 쓰는 진정한 프로였다.   

특히 사운드힐은 이미 클래식음악인들에게도 널리 알려져 국내의 많은 클래식앨범작업이 이루어지고 있다.  클래식음악작업은 톤마이스터인 그에게는 더 없이 많은 창작정신을 요구하는 고난도 녹음작업으로서 이미 정경화의  비발디사계(EMI), 금호사중주단의 Andante For You(Aulos), 소마트리오 연주집(Fisher Music), 김 의명 바이올린독주집(서울음반), 양성식 장승호  파가니니소나타집(Good Music) 등의 명반외에도 서울바로크합주단의 연주실황녹음 및 많은 연주자의 연주실황녹음과 합창단체의 녹음 등으로 그 만의 예술혼을 불태우고 있다.

또한 그의 직업에 대한 신념은 2001년 사단법인 한국음악스튜디오협회를 창립하기에 이르렀고 지금도 동 협회의 초대 회장으로서 국내 음악문화의 진흥과 국제화를 통한 발전, 그리고 스튜디오 사업자들의 권익보호와 좋은 녹음환경 조성 그리고 녹음 인재 발굴을  위하여 눈코 뜰 새없이 바쁜 일정을 보내고있다. 그러나 그 바쁜 속에서도 그는 실험적인 의식이 있는 사람들과 이슈가 있는 예술 명반을 만들어 남기고 싶다는 새해의 희망도 들어냈다.

그와 작별하고 <사운드 힐>의 언덕을 내려가는 기자의 발걸음은 가벼웠다. 그에게 순수와 감성의 향기가 짙게 풍기는것은 "친구여"의 작사가인 부인 하지영씨의 시적세계와 절묘한 조화를 이루는것이 아닐까 생각해보며...  서울사운드의 이 태경 대표, 그는 오늘도 하 지영 작가의 노래말처럼 절대음을 찾아 미래의 세계에 도전하고 있다.  가수들의 목소리를 가장 소중히 여기는 사람 이 태경!  한국 가요를 위해서라도 그의 발전과 왕성한 활동을 기대해 본다.   (글:김 원찬 편집장    사진: 공주연 작가)  

*이 기사는 2003년 목소리 겨울호의 기사 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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